성게는 전 세계 연안과 암반 해역에 서식하는 극피동물로, 해양 생태계에서 식물과 동물의 경계를 넘나드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다양한 종류의 해조류를 섭취하고, 그 자체로 다른 해양 생물의 먹이가 되며, 해저 생물다양성 유지에 핵심적인 종으로 평가받습니다. 이러한 성게는 번식에 있어서도 매우 독특한 생물학적 전략을 가지고 있습니다. 외부 수정 방식으로 다량의 알과 정자를 방출하고, 부유성 유생기를 거쳐 착저 후 성체로 발달하는 다단계 생애 주기를 거칩니다. 본 글에서는 성게의 산란 방식, 유생기 특징, 착저기 전환과 성체 성장까지의 전 과정을 생태학적 시각에서 자세히 살펴봅니다.
산란: 성게의 번식 시기와 방식
성게의 번식은 일반적으로 외부 수정(external fertilization)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이는 많은 극피동물과 유사한 특성을 보입니다. 개체는 자웅이별체이며, 수컷과 암컷 모두 성숙한 생식샘을 통해 각각 정자와 난자를 해수 중에 방출합니다. 산란기는 주로 수온이 따뜻해지는 봄~여름 사이에 집중되며, 지역에 따라 4월~8월이 주요 산란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성게가 외부 자극, 특히 수온의 급격한 상승, 조류 변화, 태양광 주기 등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일부 성게는 조수 간만의 차, 달의 위상 변화에 맞춰 일제히 생식세포를 방출하는 동시 산란(Synchronous spawning)을 보이기도 합니다. 암컷 성게는 개체당 수십만~수백만 개의 난자를 방출할 수 있으며, 수컷은 이보다 더 많은 정자를 배출합니다. 수정은 해류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며, 난자의 난막은 수정 직후 폐쇄되어 다정자수정 억제 메커니즘이 작동합니다. 이러한 전략은 개체 생존률은 낮지만, 종 전체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대표적인 r-선택적 번식 전략으로 평가됩니다. 최근 수산 양식 분야에서는 산란기를 인공적으로 조절하거나, 성게의 생식샘을 자극해 계획적으로 수정과 부화를 유도하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로써 고급 수산물로 분류되는 성게의 알을 안정적으로 생산·공급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습니다.
유생기: 미세한 플랑크톤으로의 시작
수정된 성게 난자는 빠르게 세포 분열을 시작하여, 난할 → 포배기 → 유생기로 이어집니다. 이 과정은 대개 24시간 이내에 이루어지며, 그 결과 나타나는 것이 플루테우스(pluteus) 유생입니다. 이 유생은 성체와는 전혀 다른 형태를 가지며, 연약하고 투명한 몸에 길게 뻗은 팔과 섬모 구조가 발달해 있습니다. 플루테우스 유생은 생후 약 1일~2개월까지 해수 중을 부유하며 생활합니다. 해류를 따라 이동하면서, 해양 미세조류(클로렐라, 나노클로롭시스 등), 박테리아, 유기 부유물 등을 섭취하여 체내 에너지를 축적합니다. 성게 유생은 부유 생활 동안 뚜렷한 좌우대칭을 보이며, 내부적으로는 성체의 주요 기관 구조(장, 외골격, 가시 형성 기관 등)를 서서히 갖추기 시작합니다. 유생기의 길이는 종, 수온, 먹이량에 따라 차이가 크며, 일반적으로 30~45일 사이입니다. 이 시기는 생존에 있어 매우 취약한 단계로, 자연 상태에서는 포식성 플랑크톤, 어류, 해파리 등에 쉽게 먹힐 수 있으며, 수온 변화나 영양 결핍 또한 치명적입니다. 따라서 유생기의 생존률은 수천~수만 분의 일 수준이며, 이는 성게가 한 번에 많은 난자를 방출하는 진화적 이유와도 연결됩니다. 양식 현장에서는 유생기를 인공적으로 관리하여 생존률을 극대화하는 기술이 중요합니다. 청결한 해수 유지, 수온 20도 내외의 유지, 고농도 조류 공급 등이 기본적인 조건입니다. 유생기 말기에 접어들면, 성게는 체내에 프라이멀 디스크(착저판)을 형성하고, 바닥에 붙을 준비를 하게 됩니다.
착저기: 바닥에 붙어 성체가 되기까지
성게 유생은 특정한 신호에 의해 착저기(Settlement stage)로 진입합니다. 착저란 유생이 자유롭게 떠다니는 부유 생활을 종료하고, 암반, 조개껍질, 해조류 등의 표면에 달라붙어 정착성 생활을 시작하는 단계입니다. 착저를 유도하는 환경 신호로는 해저 표면의 질감, 특정 미생물 또는 해조류에서 분비되는 화학물질(착저 페로몬), 수온 등이 있습니다. 유생은 이러한 신호를 인식하고 착저판을 이용해 안정된 표면에 달라붙으며, 이후 급격한 형태 변화가 진행됩니다. 이 과정을 변태(Metamorphosis)라고 하며, 완전한 성체 형태로 전환되기까지는 며칠~수주가 소요됩니다. 착저 후에는 외골격이 강화되고, 방사대칭 형태가 뚜렷해지며, 가시가 바깥으로 돌출되기 시작합니다. 초기에는 1~2mm 크기에 불과하지만, 하루에 약 0.1~0.2mm씩 성장하며, 약 1년 후에는 3~5cm 크기의 준성체로 자랍니다. 이때부터 성게는 해조류, 미세조류, 박테리아 층 등을 먹으며 주변 해양 식생에 영향을 주기 시작합니다. 해조류를 과다하게 섭취할 경우, 갯녹음(바다사막화)의 원인이 되기도 하므로 성게의 서식 밀도는 생태계 건강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양식업에서는 이 시기의 성게를 수하식이나 가두리 양식으로 관리하며, 품질과 성장률을 안정화시킵니다. 착저 후 18~24개월 정도가 지나면 성게는 완전한 성체로 발달하며, 생식샘도 성숙하게 되어 다음 세대의 번식을 준비하게 됩니다.
결론
성게는 외부 수정부터 시작해 부유 유생기, 착저 및 성체로 이어지는 긴 여정 속에서 다단계 생존 전략을 활용하는 해양 생물입니다. 각 단계는 주변 환경, 해류, 수온, 먹이 등에 의해 영향을 받으며, 이들 생태적 요인을 조절함으로써 양식 성공률을 높일 수 있습니다.
성게의 생애 주기를 이해하면 생물학뿐 아니라 수산업, 생태계 복원, 기후변화 대응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할 수 있는 통찰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먹는 성게 알의 뒷면에는 이처럼 복잡하고 놀라운 생명의 흐름이 존재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